2026년 2월, 한국 연극계에 깊은 슬픔이 드리웠습니다. 서양 희곡을 한국적 정서와 시대상에 완벽하게 녹여내 ‘한국화’ 연극의 기틀을 마련했던 거장, 김정옥 연출가가 향년 90세로 별세했습니다. 고인의 타계 소식은 한국 현대 예술의 한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상징하며, 연극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김정옥 연출가는 1960년대 말 극단 ‘자유’를 창단하여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킨 주역입니다. 특히 유진 오닐,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 서구 거장들의 작품을 단순히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말과 몸짓, 시대적 고민이 담긴 옷을 입혀 관객과 소통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척박했던 당시 한국 연극계에 새로운 활력과 방향성을 제시한 역사적인 업적이었습니다.
김정옥, 한국 연극사의 거목이 지다
고인은 평생을 연극의 본질, 즉 ‘가치’를 탐구하는 데 바쳤습니다. 그의 작품 세계는 화려한 볼거리나 단발성 트렌드를 쫓기보다는, 인간의 근본적인 고통과 해방을 다루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러한 깊이 있는 접근 방식은 오늘날 소비재 시장에서 초저가 상품에 열광하는 현상이 보여주듯, 일시적 만족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예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그의 대표작인 ‘따라지의 향연’, ‘리어왕’ 등은 한국 연극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연출가의 역량과 배우들의 앙상블이 빚어내는 시너지의 정수를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서양의 보편적인 주제를 한국의 굿, 판소리 등의 전통 형식과 절묘하게 결합하는 시도는 수많은 후학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이후 한국 창작 연극 발전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한국화된 서양극, 시대정신을 담다
김정옥 연출의 ‘한국화’는 단순한 배경이나 의상의 교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원작이 가진 사유의 깊이를 한국적 맥락으로 재해석하여, 당대 사회의 모순과 비극을 관통하는 통찰을 제공하는 작업이었습니다. 1970~80년대 권위주의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의 연극은 관객들에게 익숙하지만 낯선 형식으로 저항과 성찰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공론장이 되었습니다.
예술가로서의 고인의 꼿꼿한 자세와 끊임없는 실험 정신은, 건강을 지키며 노년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는 비결과도 닮아 있습니다. 김정옥 연출가는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연극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으며, 그의 마지막까지도 새로운 무대를 향한 기획과 고민을 이어갔던 진정한 현역이었습니다. 예술가에게 있어 창작은 곧 삶의 원동력이자 건강 그 자체였음을 보여줍니다.
후학에게 남긴 유산, 그리고 연극의 미래
고인의 타계는 한국 연극계에 큰 공백을 남겼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특히 후학 양성에 헌신했던 그의 노력 덕분에, 현재 한국 무대에서 활동하는 많은 중견 및 신진 연출가와 배우들이 김정옥 사단의 정신과 방법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고인의 숭고한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 연극의 국제적 위상을 더욱 높여야 할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연극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김정옥 연출가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시대와 소통하고 관객의 심장을 울리는 진정성 있는 예술만이 결국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그의 연극 인생은, 예술이 단순히 소비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는 근원적인 행위임을 마지막으로 일깨워줍니다.